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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저질러서 덮은 영국과 적게 저질러서 못 덮은 나라
이건좀아니지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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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230 추천 7 11/06 22:06




세르비아 공화국(Republic of Serbia)



지금이야 시끄럽던 발칸 반도도 잠잠해지고 관광업과 공업 활성화로 점차 활기를 띠기 시작한 듣보잡 나라 중 하나일 뿐이지만,



1. 세르비아를 역사의 전면에 제대로 등장시킨 사라예보 사건과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세르비아는 불과 3년 전에 벌어진 이탈리아-튀르크 전쟁에서 오스만 제국이 이탈리아군에 맥을 못추고 털려나가고,

종국에는 사실상 통제를 벗어난 채인 이집트를 제외하면 유일한 아프리카 영토였던 리비아(트리폴리타니아) 일대를 이탈리아에게 빼앗기는 걸 보면서,

러시아 및 러시아가 주도하던 발칸 동맹의 세력 확장을 위한 절호의 기회임을 엿보았음.


러시아 제국의 주도 아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 대항할 발판으로 활약하게 될 발칸 동맹의 참가국으로 예정되어 있었던 나라,

세르비아와 불가리아는 각각 보스니아, 알바니아를 장악해 아드리아 해로 진출하려는 욕심과,

트라키아(현 그리스 북동부, 터키 북서부 유럽 영토 일대)를 점령하고 차리그라드(오스만 제국의 수도 코스탄티니예이자 현 이스탄불)을 점령하겠단 욕심을 각각 지니고 있었고,


더불어 남알바니아 점령에 대한 욕심으로 나선 그리스 왕국에다가,

세르비아의 영원할 것만 같았던 똘마니(?) 몬테네그로가 꼽사리끼면서 1차 발칸 전쟁이 벌어졌고,

오스만 제국은 역시나 여기서도 여지없이 탈탈 털리면서 에디르네를 포함 수도 코스탄티니예 지척까지 영토를 잃어버리는 참패를 당함.


하지만 전후 처리에 있어 상당히 심각한 문제를 낳았는데,

당시 불가리아군은 오스만 제국의 주력을 상대하느라 영토 확장에 신경쓸 여력이 못 되었고,

세르비아는 불가리아가 정신팔린 틈을 타 원래 반띵하기로 약조했던 북마케도니아 일대를 혼자 다 쳐먹어버림.


게다가 전쟁이 끝난 뒤에 세르비아가 보스니아와 알바니아를 온전히 장악했냐면 그것도 아닌 것이,

보스니아는 이 시기 이전에 이미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보호령으로 편입된 상태,

알바니아는 세르비아가 아드리아 해에 진출하는 걸 아니꼽게 보았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 이탈리아 왕국의 방해로 독립국화.


이 때문에 북알바니아를 점령한 몬테네그로와 남알바니아를 점령한 그리스도 압력에 못 이겨 철수한 상황.

결국 피는 있는대로 흘려놓고 과실은 제대로 먹지도 못한 세르비아는 불가리아의 점령지 양도 요구를 거부하고 북마케도니아를 혼자 다 먹은 채로 놔둠.

사실 이건 혐성질도 혐성질인데 무엇보다 열강들의 혐성질때문에 세르비아도 제대로 피 본 거라 딱히 할 말은 없음.


여기에 제대로 빡친 불가리아와 불가리아의 장군 미하일 사보프가 결국 그리스와 세르비아를 상대로 독단으로 선전포고를 감행.

세르비아의 똘마니 몬테네그로는 당연히 참전했으며,

남부 도브루자를 노리고 있던 루마니아 왕국도 불가리아의 뒤통수를 화려하게 후려쳤고,

발칸 영토를 전부 다 먹진 못해도 일부는 수복하고야 말겠다는 오스만 제국까지 참전하면서,

불가리아는 1대 5의 싸움을 시작하게 됨.



싸울 군대가 있으면 뭐하냐

사방이 다 적인데



결국 개전 2달만에 흑해에 접한 동쪽 빼고 사방 모든 방향에서 개탈탈 털리며 수도를 따일 뻔할 위기에 놓인 불가리아가 강화를 요청,

2차 발칸 전쟁은 불가리아의 완패로 끝나고, 서트라키아는 그리스령으로, 북마케도니아는 세르비아령으로,

남부 도브루자는 루마니아령으로 영토가 확정되며 불가리아는 발칸 전쟁 이전보다도 영토가 축소되는 비극을 겪음.



결국 발칸 전쟁 두 번 치르면서 제일 많이 떡상한 건 세르비아, 무엇보다 참전 안 하고 떡상한 것까지 합하면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반대로 참전은 안 했지만 가장 막심한 피해를 본 게 발칸 동맹의 해체로 제대로 피 본 러시아 제국.


세르비아가 그래도 제법 떡상했으니 이제 좀 조용히 살지 않을까? 싶었더라면,

말했다시피 얘네가 전쟁을 일으킨 목적은 보스니아와 알바니아 장악.

예정에도 없었던 북마케도니아 땅만 낼름 먹고 빠질 놈들이 아니었던 것임.


그 결과가 보스니아 내 세르비아계 극우 민족주의 테러 단체인 흑수단(검은 손)과,

흔히 흑수단이란 이름으로 알려져 있기도 한 협력업체(?) '젊은 보스니아'에 대한 지원이었고,

세르비아 왕국은 겉으로는 내색조차 않으며 흑수단과 젊은 보스니아를 은밀히 지원해,

1914년 6월 28일 사라예보 시내 한복판에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프란츠 페르디난트 황태자 부부를 암살.


그 뒤는 다들 알다시피 주모자를 내놓으라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최후통첩을 쌩까고선 뒷배인 러시아를 믿고 전쟁 준비나 한 세르비아 왕국의 행각으로 인해 벌어지는,

당대 세계에서도 이만한 전쟁은 진짜 다신 없겠다 하며 이른 모든 전쟁을 끝내기 위한 전쟁,



제1차 세계대전의 시작이었음.



그럼 뭐 1차대전 당시에 세르비아가 좀 잘 싸우기라도 했느냐? 한다면,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민족주의의 광풍이 부는 세상에서 다민족으로 구성된,

그야말로 상상 이상으로 약체화된 군대를 이끌고 있던 탓에 5회의 공세를 막아내고 승승장구했지만,


1915년, 안 그래도 2년 전 2차 발칸 전쟁 때의 혐성질때문에 이를 갈고 있던 불가리아가 동맹국의 편에 서서 참전함으로써

1년도 못 버티고 수도 베오그라드를 날린 채 왕가는 런했다.


그리고 세르비아 왕국의 뻔한 욕심으로 인해 전쟁에 말려들어간 러시아 제국,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수많은 열강과 식민지들의 수천만에 달하는 생명이 전쟁의 불길 속에 사그라들었으며,

보불전쟁(1871)이후 43년간 유럽의 태평성대를 일컫는 낭만주의의 시대,

벨 에포크의 종식과 함께 세계를 더없이 암흑 속으로 끌고 들어가는 계기가 된다.



2. 전간기의 스크루지 영감, 제2차 세계대전에서의 트롤링


문제는 세르비아의 막가파식 트롤링이 여기서 끝나는 게 아니라는 건데,

1914년 제1차 세계대전 개전 당시에,

굳이 안 끼어들어도 됐을 전쟁인데도 형제국 세르비아를 돕겠다며 참전한 고마운 나라,

몬테네그로를 전쟁이 끝나자 토사구팽하여 무력으로 합병,

이후 유고슬라비아 왕국으로 계승되는 세르비아-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 왕국 내 세르비아의 일부로 만들어버렸다.


욕심쟁이 세르비아의 유고슬라비아도 일단 세력이 크게 확장되었다곤 하나 불가리아의 참전 이후 답도 없이 털려나간 덕분에,

전후 재건에 크게 힘을 써야할 나라가 되었으며,

민족주의의 광풍은 꺼지지 않고 오히려 활활 불타오르는 바람에,

이는 옆나라 이탈리아에서 시작되는 파시즘의 범람으로 이어지기까지 했다.


그리고 민족주의가 팽배하는 세상에서,

유고슬라비아는 무려 다민족 국가였음.



1920년 라팔로 조약으로 이탈리아에게 이탈리아계 인구가 많이 사는 달마티아의 도시 자다르(차라)를 넘겼고,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계 인구가 거주하기도 하는 이스트리아는 1차대전 승전국으로서 이탈리아가 채갔기 때문에,

시작부터 불완전하고 불안정하게 출범한 유고슬라비아 왕국은,

시작부터 각 민족간 알력 다툼과 이를 힘으로 억누르려고 세르비아계가 무던히도 노력해준 덕분에,

누가 구멍 하나 뚫어주면 곧장 폭발해버릴 민족의 용광로로 전락해버렸음.


이런 시국에 카라조르제비치 왕조의 페타르 2세가 즉위했음.

아버지가 너무 일찍 서거한 탓에 성년을 맞이하지도 못한 채로 왕위에 오른 페타르 2세를 대신해,

유고슬라비아 왕국은 페타르 2세의 작은아버지뻘 되는 섭정 파블레 공과 의회가 공동으로 지도하는 체제가 되었는데,

권력의 우선은 어디까지나 섭정인 파블레 공이었고 의회는 곁다리에 불과했으며,

그나마 있다는 이 의회도 세르비아계가 진작에 장악한 상황.


이런 아찔한 상황에서도 다행이었던 것은 파블레 공이 생각 외로 꽉 막히지 않은 개방된 진보적 인사였다는 것.

권력을 잡았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독재하는 게 아니라 자신이 나라를 안정시켜,

조카인 페타르 2세에게 안정된 나라를 물려주고자 하는 그 시대의 진정한 성인군자였다는 것.


곳곳에서 끓어넘치는 각 민족들의 세르비아계에 대한 적대감 분출과,

이를 막기 위한 파블레 공의 노력으로 용광로마냥 펄펄 끓어오르던 유고슬라비아 내의 정국은,

차차 안정을 찾아가기 시작했고,


때마침 공산주의자들의 준동이 눈에 띄게 늘어난 데다가,

당시 제2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말미암아 주변국들이 죄다 추축국에 가담한 상황.

나라를 안정시킬 방안을 모색하고자 추축국의 주요 멤버인 이탈리아, 독일에 눈길을 돌린 파블레 공은,

 삼국동맹조약을 체결하여 추축국에 가담하였으며,


이 때 파블레 공이 추축국과 맺은 삼국동맹조약의 주요 내용에는,

유고슬라비아가 추축국의 일원이 되기는 해도 독일의 전쟁에 반드시 참가할 필요는 없다는 내용이 기재되어 있었기 때문에,

일이 만약 잘 풀렸더라면 적어도 독일이 살아있는 동안에는 그야말로 평화와 안정을 보장받을 수 있는 상태였음.


하지만 반독주의 정서가 팽배한 세르비아계 의회는 성년을 맞이하기 직전이던 페타르 2세를 꼬드겼고

그를 선동해 친미, 친영파가 주도하는 쿠데타에 참가시키고,

친정을 선포하게 해 친독외교를 주도한 파블레 공을 섭정에서 끌어내려버리며,

거기에 덤으로 삼국동맹조약에 서명한 지 사흘도 되지 않아 일방적 파기를 주문하게 해,

이로 인해 독일과 이탈리아, 추가로 헝가리와 루마니아, 불가리아의 어그로를 무려 동서남북 4방향에서 다 끌어버리는,


나라의 미래따윈 생각도 않고 그저 자신들의 기분에 의해서만 외교 정책을 결정해버리는,

미치도록 비정상적인 행위를 저질렀으며,


결국 열흘도 채 되지 않아 시작된 독일의 침공으로 인하여,

민족간 균열을 겨우 봉합시킨 파블레 공의 노력이 무색하다는 듯,

유고슬라비아 왕국은 크로아티아 우스타샤의 반란 등으로 인해 순식간에 와해되어 무너져버렸고,


침공이 시작된 지 11일만에 추축국에 항복하며 괴뢰국 신세로 전락해버린다.


참고로 팔랑귀 페타르 2세는 개전이 임박하자 즉시 그리스를 통해 영국으로 런해버렸다.




X발


쓰다보니 빡쳐서 더 못쓰겠다

나머지 내용은 유고슬라비아 내전 찾아보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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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십사【교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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