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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읽어조


 이야기에 몰입한 엘케인은 직전의 생각을 잊고는 자기도 모르게 묻고 말았다.

 

 그러면 빨간 비늘은요? 머리에 난 뿔은 또 뭔데요? ……!”

 내가 할 말을 대신해 줬으니까, 이번 한 번은 봐준다.

 청년도 너와 똑같은 의문을 품었어. 뭔가 더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 아니, 그래야만 했어. 겨우 늑대 한 마리 잡은 건 공이 될 수 없으니까. 그래서 청년은 계속해서 산을 수색했어.

 다행히 청년의 생각은 옳았어. 얼마 못 가 또 다른 괴물을 발견한 거야. 이전의 늑대보다도 소문에 근접한. 이번에는 덩치가 과장 안 보태고 집채만 했어. 생김새는…… 글쎄, 뭐 하나 콕 집어서 닮았다고 하기에는 뒤죽박죽 여러 종이 합쳐진 모습이라.”

 그렇담 키메라? , …….”

 

 엘케인이 다급하게 입을 틀어막자, 로버트는 피식 웃으며 소년의 이마를 쓰다듬었다.

 

 흐흐흐, 순진하기는. 그 정도 추임새는 괜찮아. 반응이 있어야 얘기하는 사람도 할 맛이 나는 법이지.”

 

 허락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엘케인은 나불거렸다. 과연, 그 스승에 그 제자.

 

 그럼 계속 떠들어야지. 소문의 괴물이 키메라라면, 이야기의 배경은 본대륙 서부인가 보죠? 거기에 잔뜩 산다고 들었으니까.”

 정답.”

 어라, 그러면 소대륙과는 한참 멀리 떨어진 곳이잖아요. 그리고 거기는 사람 하나 못 사는 마경인데? , 제대로 알고서 얘기하는 거 맞아요?”

 어떻게 그라닉스 산과 연관이 되는지는 듣다 보면 알아. 그리고 그땐 사람이 살았어.”

 도대체 얼마나 옛날인 거예요?”

 …… 천 년쯤 됐나? 잘 모르겠다. 내가 시간 감각이 영 시원찮아서.”

 천 년이면…… 에디키어가 봉인되었을 때네요?”

 

 본대륙 서부를 사람이 살 수 없는 땅으로 만든 것이 바로 에디키어였다. 전설에 의하면 인간과 계약을 했다지. 제 주제를 모르는 어느 아둔한 자가 왕이 되고 싶다는 소원을 영혼과 맞바꾼 것이다. 그러나 상대는 악마, 소원을 제대로 들어주는 법이 없는. 에디키어는 본대륙 서부의 인간을 몰살, 계약자에게 백성 없는 나라를 쥐여주었다고 한다.

 ……잠깐, ‘왕이 되고 싶다’?

 

 알아버렸다, ‘드래곤의 정체.”

 

 그리고 청년이 누구인지도. 그럼 어쩔까. 말해 버릴까? 아냐, 더 좋은 생각이 있어.

 

 아이, 뻔해라. 너무 뻔해서 더 들을 필요도 없겠는데요, ? 연습이나 마저 해야겠다.”

 

 이렇게 말하며, 엘케인은 자리에서 일어나는 시늉을 했다. 그러자 로버트는 호들갑을 떨며 매달리는 것으로 호응했다.

 

 안 돼, 모른 척해줘! 하던 말은 다 하고 싶단 말이야!”

 ── 어쩔까나.”

 뒷이야기가 궁금하지 않아?”

 

 장난이라는 게 이렇게나 재미있는 건데 그 맛을 왜 이제서야 알았을까? 소년은 키득거리며 다시 누웠다.

 

 그래요, 계속해 줘요.”

 이게 누구한테 저런 못된 짓을 배웠나 몰라.”

 누구긴요, 제 스승님은 천재 대마법사 로버트 브라운님밖에 없는걸요?”

 말을 예쁘게 하니까 봐준다. 그럼…… 키메라에서 끊겼었지?”

 

 엘케인이 고갯짓으로 답하자 로버트는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지금이야 다들 키메라가 뭔지 알지, 그때는 생소한 괴물이었거든? 그래서 병사는 물론이요, 청년까지도 깜짝 놀랐어. 동요하는 사이 키메라는 달려들었고, 병사들은 순식간에 쓸려나갔지. 청년은 그럭저럭 분전했지만, 몸도 성치 않은 사람이 버텨봤자 얼마나 버티겠어? 청년은 키메라의 날카로운 발톱에 갈가리 찢겨버렸어. 그리곤 정신을 잃었지. ‘영영 깨어나지 못하겠구나. 그래도 최후의 순간까지 전사답게 싸울 수 있었으니 그걸로 만족하겠다.’라고 생각하면서.

 하지만 끝이 아니었어. 눈을 감고 난 그다음이 있었던 거야. 정신이 든 청년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어. 그리고 주변을 살폈지. 청년이 깨어난 곳은 오두막이었는데, 혼자 사는지 살림살이가 소박했어. 한편 집주인은 잠시 자리를 비운 듯, 사람의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어.

 청년은 밖으로 나섰어. 집 앞 텃밭에서는 흔해 빠진 작물과 정체 모를 풀이 자라고 있었어. 아마도 약초가 아닐까, 청년은 그렇게 추측했지. 그런데 풍경이 묘했어. 아무리 봐도 사람 사는 동네가 아닌 거야.

 자기가 아직도 산속에 있다는 걸 깨달은 청년은 다시 집 안으로 들어갔어. 천운이 도와 간신히 건진 목숨, 또 키메라를 만나 잃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청년은 가만히 은인이 돌아오기를 기다렸어.

 그러다 한 가지 이상한 점을 깨달았어. 몸이 말도 안 되게 가벼운 거야. 처음부터 다친 적 따윈 없었다는 듯이. 아니, 그것조차도 표현이 모자랐어. 다시 태어나기라도 한 것처럼, 그렇게나 몸이 매끄럽게 움직였으니까. 청년은 속으로 감탄했어. 도대체 얼마나 의술에 통달했기에 상해는 물론이요, 장애까지도 말끔히 고쳐내는 걸까. 한편으로는 의구심이 들었지. 그런 명의가 왜 이런 마굴에 숨어 사는 걸까…….”

 

 엘케인은 이유를 짐작해낸 지 오래. 그러나 받은 부탁이 있으므로 잠자코 듣기만 했다.

 

 청년의 의문은 곧 풀렸어. 집주인이 돌아왔거든. 기척을 느낀 청년은 생명의 은인을 맞이하러 문 앞으로 걸어갔어. 오래 기다릴 것도 없이 문은 금방 열렸고, 청년은 동시에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했어. ‘감사합니다. 덕분에 목숨을 구했습니다.’

 그리고 고개를 들었지. 그 순간 청년은 심장이 멎는 줄 알았어. 왜냐하면 청년의 눈앞에 서 있는 것은 소문의 그 괴물이었거든. 하지만 두 발로 걸어 다녔고, 몸집은 청년과 비슷했어. 아마 키메라 목격담과 섞인 걸 거야. 소문이란 그런 거니까.

 아무튼, 괴물의 모습은 끔찍했어. 사람 몸에 뱀 가죽을 씌운 것 같다고 해야 할까? 얼굴을 제외한 전신에 붉은 비늘이 돋아있었고, 꼬리는 아예 뱀을 뚝 잘라 붙여놓은 거 같았지. 그리고 손발톱은 맹수처럼 굵고 날카로웠어.

 , 이마에는 뿔이 한 쌍 솟아나 있었어. 공막…… , 이렇게 말하면 모르겠구나. 눈 흰자위 부분 있지? 거기가 새까맸어. 뱀 같은 눈동자는 새빨갰고. 그 와중에 왼눈은 기형이었는데, 눈알 십수 개가 한 구멍에 돋아난 양 눈동자가 여러 개였어. 크기는 제각각이었고.

 청년은 소름이 돋다 못해 몸서리까지 치고 싶었지만, 최대한 참아냈어. 모습이야 어쨌든 자길 살려준 은인이잖아.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한 거지. 그는 아무렇지 않은 척 괴물에게 손을 내밀었어. 그러자 괴물은 미소 지으며 청년의 악수를 받아줬어. 그리곤 길쭉한 두 갈래 혀를 날름거리며 이렇게 말했지.”

 

 제가 먼저 당신을 다치게 했으니,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또한, 당신의 동료들에 대해서는 유감을 표하는 바입니다.”

 

 청년은 무어라 대답해야 할지 한참을 고민했어. 보아하니 키메라를 부린 게 이 괴물인 듯한데…… 살의를 갖고 쳐들어온 적에게 대항한 거니까 정당방위잖아? 하지만 저쪽이 먼저 사람을 공격하지 않았으면 애초에 없었을 일이고…… 그런데 말하는 건 또 정중해서 함부로 누군가를 해칠 것 같지는 않으니 오해가 있었나 싶기도 하고……. 복잡해진 머릿속이 도무지 정리가 되질 않았지.

 그 속을 아는 건지 모르는 건지, 괴물은 자신을 소개했어.”

 

 이 대목에서 로버트는 잠시 말을 끊었다. 어쩌면 이대로 이야기가 끝나버리는 편이 청년에게는 좋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시간을 멈춤으로써 비극을 막을 수 있다면. 그러나 세월은 하염없이 흘러갔고…….

 

 저는 에디키어 옵티시아라고 합니다. 제 이 모습을 보고도 겁내지 않는 인간을 만나 기쁩니다.”

 

 ……그의 이야기는 역사가 된 지 오래. 안타깝다. 청년은 노력을 믿고 꿈을 향해 나아가다 좌초한 한 명의 인간이었을 뿐이었는데 어쩌다 악마의 꾀임에 넘어갔단 말인가.

 한편으로는 배신감이 들었다. 감정을 이입했던 만큼 강하게. 청년이 잘됐으면 좋겠다고, 그렇게나 응원했는데 기껏 한다는 게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 허깨비나 다름없는 나라의 왕 놀음을 하다가 비참한 꼴로 죽는 거란 말인가.

 그러나 엘케인의 감상이 어떠하건 이야기는 흘러간다, 정해진 결말을 향해.

 

 아마 알고서 한 말일 거야. 덕분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명확해졌거든. 청년도 자신을 소개했어. 그리고 여기 오게 된 사연을 설명했지. 물론 깊게는 들어가지 않았어. 그냥, ‘이 산에 괴물이 나타난다기에 영주님의 명령을 받고 퇴치하러 온 것이었습니다.’ 딱 거기까지만.”

 

 또 이사를 가야겠군요…….”

 

 이렇게 말하며, 에디키어는 씁쓸하게 웃었어. 청년은 그 모습이 안쓰러웠어. 이토록 뛰어난 실력을 갖춘 의사가 고작 외모 때문에 숨어 살아야 한다는 게. 그조차도 들키면 도망을 쳐야 하는 신세라는 게.

 그런데 한편으로는 또 이런 생각도 들더라고. ‘이대로 에디키어가 산을 떠나면 사건은 해결되겠지만, 그런 미적지근한 결말로는 내 공이 부각되질 않는다. 당장 눈에 보이는 실적을 거두어야 한다.’

 청년은 고민했어. 어떻게 해야 자기도 만족하고 에디키어도 만족하는 결말을 끌어낼 수 있을지. 그러다 괜찮은 생각을 하나 떠올린 청년은 에디키어에게 제안했어. ‘그러지 말고 저와 함께 갑시다. 당신의 실력이라면 영주님의 주치의가 되고도 남을 겁니다.’

 에디키어는 썩 내켜 하는 눈치가 아니었지만, 청년은 포기할 수가 없었어. 원래는 공을 세우더라도 잠깐의 수명연장에 지나지 않았지. 그걸 청년도 알고 있었고, 그래서 죽음을 초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던 거야. 하지만 지금은 몸이 멀쩡해졌잖아? 더 올라갈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는데 어떻게 단념할 수가 있겠어? 그래서 청년은 빌다시피 해서 에디키어를 설득했고, 끝내는 함께 산에서 내려오게 됐어.”

 

 저게 바로 악마의 수법인 걸까? 대가 없는 호의를 베풀어 신뢰를 얻고, 동시에 헛된 희망을 불어넣어 먹잇감이 먼저 매달리게 만드는 것이? 엘케인은 에디키어의 교활함에 치를 떨었다.

 

 청년은 에디키어와 함께 영주를 알현했어. 그런데 일이 생각처럼 풀리지가 않더라고. 에디키어의 모습을 본 영주는 질겁을 하며 왜 저런 끔찍한 괴물을 데리고 온 거냐고 화를 냈어. 청년은 자초지종을 설명했지만, 소용없었지. 영주는 병사를 모두 잃은 것에 대한 책임과 괴물을 퇴치하라는 명령을 어긴 죄를 물었고, 그렇게 청년은 지위를 잃고 성에서 쫓겨나 버렸어.

 한편 에디키어는 성에 남겨졌어. 물론 영주의 주치의로서는 아니었지. 그는 지하감옥에 수감당했어. 키메라를 부려 사람을 해한 죄로 참수형에 처해진 거야. 처형일은 다음번 보름달이 뜨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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