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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와 제비 - #01 숲속의 주인 (6)
하얀액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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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99 추천 3 11/22 02:05

006

 

 인간이라는 짐승들은 벌레 떼와 같았다. 아니, 풀을 갉고 나무를 쏠아 말려 죽이거나 털가죽을 뚫고도 알을 슬어 놓곤 하는 그것들보다도 훨씬 더 지독했다. 그것들은 산이 없는 평탄한 땅에는 예외 없이 벽을 세우고 자기들의 보금자리를 만들었다. 좋은 사냥감이 돌아다닐만한 곳은 모두 남김없이 그것들이 먹이로 삼는 풀과 나무를 심고, 그것으로도 모자라 늑대들과 서로 사냥감을 두고 뺏고 빼앗는 쟁탈이 벌어지곤 했다.

 인간들은 늑대 무리가 으레 그러듯이, 사냥감으로 정한 짐승들을 여러 마리씩 무리를 지어 한 곳으로 몰아 사냥했다. 그들이 잡는 짐승은 종류를 가리지 않았다. 숲의 무리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푸른 눈이 예전에 먼 발치에서 지켜본 바로는, 짐승을 몰아가는 인간들이 두 패로 나뉘어 커다란 둥근 모양을 지어 사냥감을 몰다가 양 끝의 인간들이 서로 만나서 그 안의 둥근 모양의 땅 안에 짐승들이 갇히면, 그제야 번쩍이는 이빨 같은 것이 끄트머리에 달린 막대기나 훨씬 커다랗게 번쩍이는 이빨이 달린 몽둥이, 멀리서도 짐승을 잡을 수 있는 막대 따위를 든 사람들이 사냥감을 둘러싼 인간들 안으로 들어가 살육을 벌였다. 인간들의 사냥 솜씨는 감탄스러웠다. 하지만 인간들의 하는 양을 똑같이 따라 하기에는 그가 거느린 무리의 수가 많지 않았다.

그들의 입 안의 이빨은 분명 우리보다 짧고 뭉툭하며 간혹 딱딱한 껍데기를 몸에 걸친 인간들 역시도 안의 가죽은 연약하기 그지없었건만, 그들이 재주도 좋게 앞발에 들고 다니는 그 차갑고 번쩍이는 이빨만큼은 그 어떤 늑대도 갖지 못했다. 굳이 늑대들이 하듯이 발소리를 죽이고 틈을 노려 숨이 끊어질 듯 달려들지 않아도, 굽어졌다가 펴지면서 이빨이 달린 나뭇가지를 날려 토끼나 사슴, 산돼지 까지도 픽픽 쓰러뜨리는 그런 수단 같은 것은 푸른 눈은 물론 그 어미도, 아비도 갖지 못했다. 혹여라도 운이 좋아 인간들의 쫓김을 피해 숨는 데 성공한 다치고 상한 사냥감들은 인간들을 따르는, 자신들과 조금 다르게 생긴 늑대들이 냄새로 추적하여 물어다 바쳤다.

 사냥이란 그저 배를 채우고 저들 무리마다에 딸린 식구들을 먹일 정도면 족하건만, 저 저주받을 인간들은 갖은 재주를 동원하여 땅과 숲에서 거두어 들인 먹이들을 쌓아두곤 했다. 그런 주제에 땅을 일구거나 토끼, 노루, 날짐승 따위를 쫓아 다니다가 이따금 마주치게 되는 인간들은 왜 그리도 늘 굶주리고 힘에 겨워 보이는지, 늑대인 자신으로서는 알 도리가 없었다. 그들은 엘프처럼 오래 살지도 않고 늑대나 다른 짐승들처럼 한 배에 많은 새끼를 낳지도 않건만, 그들은 징그럽게도 번창하여 땅을 뒤덮었다. 심지어는 저 먼 산굽이 아래나 강 어귀에서 수많은 인간들이 모여 서로 죽고 죽이는데도 그랬다. 늑대인 푸른 눈으로서는 알 수가 없었다.

 ‘푸른 눈의 어미는 그에게 젖을 물리며, 언젠가는 늑대들 역시도 차라리 그냥 인간의 암컷이나 새끼들을 몇 마리 사냥해볼까 하는 생각을 했었던 적이 있었다고, 자신의 어미의 어미가 또 그 어미의 어미로부터 전해 들었다고 말해 주었지만, 그런 시도를 했던 늑대들은 거의 모두 예외 없이 인간들을 따르고 있는, 우리와 말이 통하지 않는 늑대들에게 쫓기다가 결국에는 인간들의 손에 달린 그 차디차고 번쩍거리는 날카로운 이빨들에 당해 털가죽이 벗겨지는 운명을 맞았다고도 했다.

밀리고 밀린 늑대들은 결국 숲의 그늘 아래까지 숨어들었다. 다행히도 그들이 숨어든 숲의 주인들인 레셴들은 인간들 같지 않아 몹시 너그러운 축에 들었다. ‘푸른 눈의 무리가 숲에 자리잡아 살아가는 것은 초식동물들의 숫자를 조절해서 숲을 가꾸는 데에 도움을 주었으므로, 레셴들은 늑대 무리를 물리치지 않았다. 여러 새끼들이 이 숲에서 자라나 자기를 따르는 늑대들을 데리고 다른 곳으로 보금자리를 찾아 떠났다. 더러는 살아남아 자기 무리를 이뤘을 테지만 아마 많이들 죽었을 것이다하지만 그것이 태고부터 이어진 늑대의 삶이었다.

그러는 사이, ‘푸른 눈도 나이가 들어 털이 온통 잿빛을 띈 흰색으로 새었다. 몸집이 줄어들고 팔다리의 힘이나 날카롭던 이빨도 많이 닳아졌다. 하지만 그 푸른 빛으로 빛나는 안광만큼은 전혀 시들지 않았다. 그가 이끌던 무리는 이제 푸른 눈과 눈빛까지도 꼭 닮은 그의 맏아들이 우두머리 노릇을 이어 받았다. 이만큼 살아남아 새끼들이 크는 것을 지켜본 것은 모두 숲의 주인들의 덕이었다. 모든 것이 마냥 좋지만은 않았으나 그의 섭리 안에서 부족함도, 넘침도 없이 모든 것이 이루어져 왔다. 그의 다급한 비명과 헐떡임에, 싸움을 견딜 수 있을 정도로 몸이 성하고 장성한 늑대들을 모두 데리고 달려올 수밖에 없었던 이유이다.

저 인간들을 살펴보니 꼭 자신처럼 털이 하얗게 샌 수컷 한 마리와 마찬가지로 비슷한 색상의 털 색깔을 가진 암컷 한 마리이다. 혹시 제 새끼에게 사냥을 가르치려 이 숲에 들어온 것일까? 과거에 비하면 숲도 줄어들고, 그 숲을 지키던 레셴들도 이러저러한 이유로 사라져서 정말 한 주둥이 정도밖에는 남지 않은 이 땅에 대체 무슨 귀한 짐승을 잡겠다고 들어왔는지, 이 숲의 주인을 해치고 있는 인간들은 길고 빛나는 이빨을 두 개 씩이나 등에 걸머지고 있었다. 작은 이빨이 달린 나뭇가지를 쏘는 막대는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렇다면 큰 상관이 없다.

이제는 장성하여 자신보다도 훌쩍 덩치가 커버린 맏아들 작은 푸른 눈이 이끄는 젊고 힘있는 무리들은 저들을 충분히 압도할 것이었다. 어쩌면 옛날에 자신이 지켜봤던 인간들이 그랬듯이, 둘러 싸서 사냥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푸른 눈은 그저 한 발짝 뒤로 물러나 몸을 숨긴 채로 있기로 했다. 물러나서, 귀여운 작은 푸른 눈이 어엿한 우두머리 수컷 늑대로 확실히 자리매김하는 것을 기쁘게 지켜보기로 했다. 감히 겁도 없이 숲의 주인에게 이빨을 들이댄 저 인간들은 살아서 이 숲을 나가지 못하리라. ‘작은 푸른 눈은 무리를 둘로 나누어 인간들을 하나씩 둘러싸고 사냥할 작정인 듯했다. 불현듯 푸른 눈은 따스한 어미 품 속에서 젖을 물던 어린 밤에 들었던 서늘한 이야기를 떠올렸다. 하지만 숲의 주인이 지켜주는 우리들은 결코 그와 같지 않으리라. 숲과 주인과 우리들을 해치려는 인간들은 모두 조각나 죽거나 숨이 조여 죽어 흙으로 돌아가는 끝을 맞으리라.

 

 

그러나 그렇지 못했다. 저 새끼 암컷 인간은 혹시 제 아비가 늑대와 흘레를 붙어 낳은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몸집이 재빨랐다. 단순히 빠르고 어쩌고 한 정도가 아니다. 이제는 흐릿해 진 자신의 푸른 눈으로는 한 줄기 빛만을 볼 수 있었을 뿐, 전혀 움직임을 좇을 수가 없었다. 아니, 아마도 자신이 갓 무리의 우두머리가 되었던 젊을 때였더라도 그 어떤 반응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허공을 가르는 늑대들의 발톱과 이빨과는 달리 저 어린 암컷의 이빨은 번쩍일 때마다 무리의 젊은 늑대들을 가르고 쪼개고 베어 냈다. ‘푸른 눈의 심장이 끔찍해졌다. 동시에 어린 날의 서늘하고 불안한 이야기가 눈 앞에 번쩍 하고 보이는 듯했다. 새끼가, 그것도 암컷이 저리 빠르고 강할진대 과연 작은 푸른 눈이 둘러싼 저 다 자란 수컷 쪽은 얼마나 더 강하고 어려운 상대일 것인가!....

 

깨갱!!!”

 

그렇게 한 층 더한 비극이 그 쪽에서 일어났다. 무릇 우두머리는 무리에서 가장 강하기에, 가장 상대하기 어렵고 강한 적을 맡아 상대하는 것이 옳다. 자신이 가르쳤던 그대로, 자신의 씨를 물려받았음이 분명한 저 푸른 안광을 빛내며 달려드는 맏이의 모습을 보았을 때, ‘푸른 눈은 그만 다급한 비명을 내지르고 말았다. 하지만 모든 것이 늦었다. 아비가 내지른 울음소리와 아들이 내지른 비명 소리는 조금의 시차도 없이 정확히 같은 순간에 울려 퍼지고야 말았던 것이다. ‘작은 푸른 눈은 곧 그 수컷 인간에게 목덜미를 눌린 채 차갑고 날카로운 그 이빨에 찔려 목숨을 잃고야 말았다.

푸른 눈우우으윽하고 억눌린 울음 소리가 목울대 밖으로 비집고 새어 나오려는 것을 간신히 참아냈다. 싸움이 더 급했다. 순간 그의 푸른 안광이 물을 먹어 흐려지는 것을 본 존재는 늑대와 인간을 포함하여 그 누구도 없었을 것이다. 어찌하랴, 어찌하랴?.. 이것이 늑대의 삶이요 죽음인 것을대장을 따르던 정예한 늑대들은 전혀 기죽지 않고 다시금 수컷 인간에게 달려들었다. 약속이라도 한 것마냥 이빨 한 개의 낭비도 없는 완벽한 공격이다. ‘작은 푸른 눈이 목숨과 맞바꾸어 만들어 준 빈틈을 무자비한 발톱과 이빨이 들이칠 것이다.

그런데 뒤이어 또다시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별안간 푸른 기운이 수컷 인간의 주변을 회오리 치며 뿜어져 나와 이빨과 발톱을 들이밀던 늑대들을 내동댕이쳐버린 것이다. 그리고 뒤이어 일어난 일은 푸른 눈을 더더욱 놀랍고 격분하게 만들었다. 움직임을 쫓는 것은 본래 동물의 본성이다. 그 본능을 이기지 못한 젊은 늑대들 사이로 명백히 위험해 보이는 냄새와 빛깔이 퍼져 나갔다. 그리고 잠시 뒤 그들은 작열하는 불꽃과 함께 불과 죽음의 냄새를 풍기며 땅에 스러지고 말았다. 남은 늑대는 없었다. 여기 고요히 분노하는 푸른 눈을 빼고는.

저 두 마리의 인간에게는 분노하며 기척을 드러내는 것은 알맞은 사냥 방법이 아니다. 대체 무슨 재주인지 저들은 제 몸을 위협하는 것들을 모두 무위로 돌리거나 회피해 냈다. 때마침..이라고는 뭣하지만 동족들이었던 것들이 내뿜는 저 지독한 불의 냄새가 푸른 눈의 냄새를 감추어 줄 것이다. 그는 바람을 마주보고 암컷의 뒤를 노릴 수 위치까지 온 힘을 다해 숨을 죽여 다가갔다. 네 놈이 나의 아들을 빼앗았으니, 나 또한 네 놈의 딸을 빼앗으리라. 따사롭고 부드럽게 맥동하는 저 목덜미가 두 번 다시 뛰지 못하도록 복수의 이빨을, 그리고 두 번 다시 그 길다랗고 날카로운 이빨을 쳐들지 못하도록 저 두 앞발마다 증오의 발톱을 박아 넣어줄 것이다. 내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잔뜩 몸을 낮춘 푸른 눈이 온 힘을 모아 도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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