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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와 제비 - #01. 숲속의 주인 (2)
하얀액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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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106 추천 7 10/22 15:56

002

 

게롤트와 시리가 의심의 불똥을 겨우 떨어낸 것은 그들이 위쳐임을 밝히고 나서였다. 침을 튀겨가며 삿대질 하던 이들은 어느 샌가 공손한 자세와 미소 띤 표정으로 언제 그랬냐는 듯이 위쳐 나으리 들에게 잃어버린 양을 찾아달라는 부탁을 해왔다. 그들이 제공할 수 있는 보수는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낮을 수 밖에 없었으므로, 게롤트는 사라진 양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수 없다며 단칼에 거절하려 하였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번엔 시리와 게롤트의 말대로 숲에 양들을 해칠 만한 존재가 있을 테니 그것들을 쫓아달라며 매달리기 시작했다. 게롤트는 거듭하여 거절하려 했으나 결국 시리가 나서 말들과 함께 머물 장소를 제공받는 조건으로 그들의 부탁을 받아들였다.

 

“시리, 우리는 계약에 따라 정당한 보수를 받고 괴물을 처리하지 약간의 성의나 온정에 끌려서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구제하는 일을 미덕으로 삼는 방랑기사가 아니야.

“그건 알지만 어차피 켈피랑 로취를 데리고 숲 속을 뒤지기는 힘들잖아요. 그 사람들한테 돈을 주고 우리 짐이나 말들을 맡긴다 한들 그걸로는 똑바로 간수할 거라 기대하기도 어렵구요. 호의로 호의를 산 셈 치면 싸게 치인 거죠.

“원래 의뢰를 맺게 되면 당연히 함께 제공받아야 할 것들을 호의로 산 셈이니 하는 말이지. 대가 없이 일하지 않는 건 위쳐들의 불문율이야. 우리가 오늘 베푼 선행이 어딘가의 다른 위쳐의 생계에 악영향을 끼칠지도 모르니까.

“그건 무슨 뜻이죠?

“시리, 네가 나를 따라 케어 모헨에 처음 와서 지냈던 때를 기억하니? 풋워크를 익히고 칼을 쓰는 법을 배우느라 온몸에 멍자국과 생채기가 끊일 날이 없고 산과 숲과 늪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몸으로 부딪쳐가며 배우던 나날들 말이야. 네가 나처럼 위쳐가 되고 싶어했기에 참고 견뎌야만 했던, 그리고 끝끝내는 네가 그저 또래 여자아이들과 같아지고 싶다며 울먹였던 그 때를. 또 괴물들을 알기 위해서 베스미어가 꺼내다 줄줄이 꿰찰 때까지 읽혔던 낡고 먼지 쌓인 두꺼운 책들을 말이다. 우리들이 쓰는 약초와 독초를 구하고 동물들의 내장이나 살점 따위를 주물럭거리면서 탕약과 기름을 만드는 방법을 배우거나 그것들에 대한 내성을 기르기 위해 때로는 램버트가 네 뒷덜미를 붙잡고 나와 에스켈이 억지로 네게 먹여야만 했던 풀과 버섯, 물약의 맛들이 얼마나 구역질 났는지도.

 

때마침 불어온 바람에 촛불이 일렁거렸다. 맞은편에 앉아 무릎을 끌어안는 시리의 표정도 함께 어두워졌다.

 

“어떻게 그걸 잊을 리가 있겠어요. 그치만 그때를 떠올려 보면 마냥 싫고 끔찍하지는 않았어요.

“그래.. 하지만 내 말은 위쳐 한 명을 만들어 내기가 그만큼 힘들다는 뜻이야. 그뿐만이 아니지. 풀의 시험을 견디지 못하고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목숨을 잃는지.. 또 그 모든 것들을 무사히 마치고 봄에 길을 나서는 갓난 위쳐들의 반절은 고작 크라운 몇 닢을 벌기 위해서 구울이나 익사체 따위를 잡다가 쓰러져서 다시는 겨울을 나러 케어 모헨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운명을 맞는단다..

“…..

“그렇게 힘들게 위쳐가 되어서 세상에 나왔는데 만약 누군가가 헐값이나 공짜로 괴물을 처리했다고 생각해 보렴. 거기에 고마움을 느끼는 사람보다는 우리가 하는 일이 그만큼 쉽거나 가치 없다고 여길 사람들이 더 많을 거야. 우리가 사람들의 감사를 바라고 사는 처지는 아니지만, 가뜩이나 의뢰가 완수되고 나면 다른 말을 하면서 약속한 돈을 깎으려 들거나 아예 떼어 먹으려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데 거기에 더 기여할 필요는 없단다. 솔직히 당장 오늘 너와 나를 고용한 하플링만 해도 나중에 어떻게 나올지는 장담할 수가 없어. 또 여기 오는 길에 말했다시피 사람들 눈에 띄는 괴물들이 줄어들면서 일거리가 줄어들었고, 그만큼 위쳐의 숫자도 많이 줄어들어서 예전만 못하다지만, 아무리 그래도 위쳐들이 괴물을 처리하고 나서 소모된 포션 재료를 사거나 장비를 손볼 돈조차 받지 못하는 처지가 되어서야 어떡하겠니?

“미안해요 게롤트.. 그럴 거라는 생각은 못 했어요.

 

게롤트는 초를 기울여 농을 흘려낸 뒤 벽난로에 나뭇가지를 더 던져 넣고는 재를 들쑤시며 말하였다.

 

“아니다.. 내가 이런 쪽에 대해서는 미처 얘기해 줄 기회가 없었으니까.. 그리고 나도 직접 겪고서야 느껴본 일이란다.

“네… 고마워요.

 

그제야 시리의 낯빛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이윽고 잦아들었던 불도 다시 피어나기 시작했다.

 

“오늘 숲에 들어가기엔 이미 때가 늦었어. 늦어진 김에 여기서 쉬면서 준비를 마치고 내일 새벽에 나서는 게 좋을 것 같아. 그래도 시리 네가 나 대신 실랑이를 해줘서 밤이슬 맞을 일은 없어서 좋네. 로취도 그럴 테고.

“저도 좋아요, 게롤트! 켈피도 좋아하겠죠?

그럼…”



 

언덕에 의지한 오두막에서 바람 부는 밤은 그렇게 깊어갔다. 그리고 바람이 잦아들 때쯤에 새벽이 찾아왔다. 폰타르 강이 토해낸 어슴푸레한 새벽 안개 속에서 게롤트와 시리는 숲으로 들어섰다. 오래지 않아 그들은 지난 밤 벌어졌던 만찬의 현장에 다다르게 되었다.

 

.. 게롤트, 제 눈이 틀린 게 아니라면 저쪽 나무뿌리 주변에 널려있는 것들이 양이었던 것의 흔적 같은데요…”

그렇구나.. 구더기가 끓는 것 같지도 않고 악취가 나긴 하지만 그렇게 심하지는 않아. 그것도 창자가 찢어진 곳에서 장액이 흘러나온 냄새이지, 썩은내는 아니로구나. 아마 마을 사람들이 어제 잃어버렸다는 그 불쌍한 양이겠지.”

 

게롤트는 살육의 부산물들을 살피며 말하였다.

 

바람이 잠잠해서 다행이다. 썩은 냄새가 퍼지기 시작하면 구울 따위의 네크로파지가 몰려들 수 있을 테니 더 번거롭고 위험해졌을 거야.”

벨렌에서도 크론들을 피해서 포탈을 열고 도망치다가 비슷한 광경을 본 적이 있어요. 그땐 양들 뿐만 아니라 사람도 같은 꼴로 있었지만요..”

늑대인간을 잡고 그렛카를 구해줬던 일 말이구나?“

잠깐, 그렛카를 만났었나요 게롤트? 그 아이는 잘 지내고 있던가요?

요안나에게 갑옷을 받으러 들렀을 때 마지막으로 봤는데, 남작의 저택에서 그대로 머물고 있었어. 부엌 일을 도우면서 지내더구나. 물론 네가 만들어 준 팽이나 선물로 주었던 에메랄드도 잘 간직하고 있었지.”

다른 까마귀 횃대 사람들은 그러면 어떻게 지내요?”

스트렌거 남작이 아내의 마음에 생긴 병을 고치러 푸른 산맥에 숨어 산다는 은자를 찾아 떠났다는 얘기는 내가 해줬던가? 지금은 성채와 부하들, 그리고 주변 마을들은 아르달 병장이 남작 대신 맡고 있단다. 물론 그들이 더 도적떼와 비슷해지긴 했으니 맡았다기 보다는 접수했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닐프가드에서 피의 남작에게 정말로 작위를 수여하고 벨렌의 통치를 맡기려는 모양이더구나. 물론 남작이 언제 돌아올 지는 모르지만.”

벨렌에도 다시 가보고 싶어요. 첫인상이 좋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친하게 지냈던 사람들이 있고, 그렛카에게는 인사도 제대로 못하고 급히 떠나야 했으니까요. 폰타르강 주변을 한 바퀴 돌고 나서는 벨렌을 다음 행선지로 잡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그래그 때 즈음이면 우리가 별 걱정없이 찾아가도 될 정도로 벨렌이 전쟁의 상처를 회복했으면 좋겠다. 그보다 네가 보기엔 어떤 것 같니?”

 

시리는 더 살펴보더니 오래지 않아 게롤트에게 대답했다.

 

.. 살점은 거의 남은 게 없어서 확신할 수는 없지만 뼈들이 같이 널려있는 걸 보니 다 큰 양을 뼈째 씹어먹을 정도로 턱이 강인하거나 거대한 녀석은 아닌 것 같아요. 예리한 발톱이나 도구 같은 걸로 뼈에서 살을 저며낸 흔적도 있구요. 아마도 넥커가 아니지 싶어요.”

너를 붙잡고 책을 읽으라며 잔소리를 하던 노력이 헛되지 않았구나. 나도 그렇게 생각한단다. 그리고 이렇게 잔반이 조금 남은 걸 보면 그렇게 큰 무리는 아니지 싶군. 원래 무리에서 떨어져 나와서 새로 정착할 곳을 찾아 다니는 녀석들일 거야. 숫자가 불어나기 전에 처리하고 굴을 찾아 부수는 게 좋겠다.”

냄새를 따라가야 할까요? 이럴 땐 케어 모헨에서 풀의 시험까지 모두 마치지 못한 게 아쉽다니까요..”

.. 강안개 때문에 피비린내와 물비린내가 섞였어. 냄새로 따라가는 건 쉽지 않을 것 같다. 위쳐센스를 아쉬워하는 네 말이 이해는 가지만 혹여라도 그런 마음을 품지는 말아줬으면 좋겠구나.. 풀의 시험으로 오감이 예민해지는 건 사실이지만 그걸로 마물의 흔적을 쫓는 것은 또 별개의 문제란다. 중요한 건 아는 걸 활용하는 지혜와 직접 겪어본 경험이니까. 그리고 위쳐의 초감각을 지니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필요한 흔적을 찾을 수 있지. 방금 무슨 소리가 들리지 않든?”

잘 못 들었어요. 마을에서 나는 소리 아닐까요?”

잘 들어봐. 방향이 달라.”

잠깐만요…. 정말 그러네요?”

 

게롤트와 시리는 간헐적으로 들리는 멀찍이서 큰 설치류가 캬악거리는 듯한 소리의 방향을 좇아 풀섶과 나뭇가지들을 헤치고 더 깊숙이 들어갔다. 도중에 발견한 넥커들이 먹다 버렸을 찌꺼기나 뼈조각, 노린내 나는 분변의 흔적이 여실한 흙바닥과 또 그 위에 찍힌 아이만한 네 발가락의 발자국들은 이들의 짐작이 틀리지 않았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흔적들은 모두 숲 가운데의 그루터기만 남은 세모진 모양의 빈터로 이어졌다.

 

우리가 제대로 찾아왔네요.”

지혜와 경험이지.”

하하전부 여섯이네요. , 하나가 더 나오네요.. 분명 저놈이 넥커 전사로군요?”

맞아. 다 커봤자 겨우 허리에 닿을락 말락 하는 보통 넥커들보다 훨씬 큰데다 일단 빛깔이 붉어서 눈에 확 들어오지.“

낌새를 채기 전에 먼저 칠까요?”

그러는 게 좋겠다. 넥커들이 처음에는 우리가 둘 뿐이니 싸우려 들겠지만 숫자가 줄기 시작하면 굴로 도망칠 거야. 넥커의 굴은 보통 입구를 2개 만들어서 U자로 파 놓고 가운데 공동을 만들어 놓으니까 그렇게 되면 한 사람이 한 쪽씩 막아 서자꾸나.”

좋아요. 혹시 도망가는 운 좋은 녀석이 있으면 제가 쫓을게요.”

그래. 네 능력을 믿으니 걱정은 하지 않으마. 그래도 한 녀석을 처리하는 도중에 등 뒤로 돌아가는 다른 녀석을 조심하렴. 넥커들은 워낙에 작고 잽싼 데다가 놈들의 손톱에 당한 상처는 쉽사리 낫지 않으니까.”

고마워요, 게롤트. 걱정은 이미 하셨지만요. 북풍(터지면 극한 냉기를 내뿜어 좁은 구역의 대상들을 순간적으로 빙결시키는 폭탄.)을 좀 챙겨왔으면 좋았을 텐데 아쉬워요. 거기까지 생각이 닿지를 않았네요.“

이제 와서 다녀오기에는 그 사이에 저 녀석들이 오늘 또 다른 문제를 저지를 지도 모르지. 아쉽지만 어쩔 수 없어.”

 

두 위쳐는 조용히 각자의 은검을 뽑아 들었다. 칼날은 아로새겨진 룬 문자들의 모양으로 빛을 발했다. 게롤트는 시리에게 고개를 끄덕여 주고는 앞을 향해 뛰쳐나가기 시작했다.

 

키룩?”

테엑?”

삐엑! 캬루!”

니야아악!!”

 

넥커들이 게롤트를 발견하고 그들을 이끄는 넥커 전사가 수하들에게 대응할 것을 명령하자, 그와 동시에 푸른 섬광이 넥커들이 모인 뒤편에 나타났다. 시리의 오른손에 칼날이 살과 뼈를 가르고 지나가는 감촉이 전해진 것은 그와 거의 동시였다.

 

서걱-

 

“위쳐의 원칙 하나. 무리를 상대할 때는 머리를 먼저 노린다.”

뉘익?..”

 

무리를 이끌던 넥커 전사는 고통스러운 단말마 대신 자신이 무슨 일을 당했는지도 모르는 듯한 의아한 소리를 낼 뿐이었다. 이윽고 앞에서 뒤로 비스듬이 올려 베어낸 궤적을 따라 재주도 좋게 양의 머리뼈를 뒤집어 쓴 붉은 색의 머리통이 조금씩 미끄러져 내려갔다. 머리를 잃은 몸뚱아리가 털썩-하고 쓰러진 것은 조금 더 뒤였다.



* 시리와 함께 나타난 녹색 섬광은 본작을 플레이 해보셨으면 아시겠지만, 라라도렌의 핏줄에 전해 내려오는 마법입니다. 그 중에서 짧은 거리를 점멸해서 도약하는 마법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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