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확인
닫기
잠시만 기다려주시기 바랍니다.
위트인들과 함께 배우는 러시아사 #3 타타르의 멍에
엠십사 【교슈】
블라인드 쪽지보내기 게시물검색
조회 89 추천 11 10/12 13:57

안녕하세요 1일 1창작자료를 올리는 위창 엠십사 교슈에요~

1화: 고대의 러시아 (wetrend.co.kr)

2화: 키예프 루스 (wetrend.co.kr)

오늘은 다시 러시아로 돌아와 러시아사 세번째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이번 시간에는 타타르의 멍에를 다루어보겠습니다.




갈갈이 찢어진 루스 공국


끊임없이 뒤바뀌는 키예프 대공


  1125년에 블라디미르 모노마흐가 죽고, 1132년에 그의 후계자 므트디슬라프마저 죽자, 키예프 루스는 짧은 전성기를 뒤로 한 채 갈갈이 분열되기 시작합니다. 루스 공국은 크게 블라디미르-수즈달 공국, 노브고로드 공화국, 갈리치아-볼히니아 왕국으로 쪼개졌습니다. 그리고 키예프는 그 사이 이권 다툼에 끼어 서서히 쇠퇴하고 있었습니다.

12세기 중엽에 들어서자 쿠만족의 침공 외의 외부적인 문제들도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스웨덴, 덴마크 등 북유럽 국가들이 발트해로 세력을 확장하여 노브고로드 공화국과 대립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또한 13세기 들어서는 4차 십자군이 콘스탄티노플을 약탈하고 라틴 제국을 세우면서 정교회 VS 카톨릭 갈등 구조가 최고조에 달했었습니다. 루스인이 최고로 약할 때 최고의 위협에 직면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앞으로 닥쳐올 시련에 비하면 이는 차라리 행복했던 시절이었습니다.



호라즘 제국의 영토

호라즘 군대


  호라즘 왕국은 호라즘 지역에서 발원한 수니파가 국교인 튀르크계 왕국입니다. 호라즘 왕국은 13세기에 무함마드 2세가 집권하며 아프간 북부와 가즈니 일대를 차지하며 역대 최대의 영역을 확보했으며, 동부 이슬람 세계에서 유일무이한 패권국이 되었습니다. 1218년, 무함마드 2세는 이교도 사신들이 감히 위대한 호라즘 제국의 영토에서 어슬렁거리는 것을 보았고 일부는 죽이고 일부는 수염을 깎아버린 채 돌려보냈습니다.

이에 이교도 국가의 군주는 크게 분노합니다. 이 이교도 국가의 이름은 몽골이었고, 몽골에서 사신을 죽인다는 것은 개처럼 죽어도 좋다는 뜻과 다름없었습니다.


몽골군과의 전투중인 호라즘 군인


몽골의 호라즘 약탈을 그린 그림


1220년 몽골 대군은 크게 힘들이지 않고 호라즘의 수도 사마르칸트를 점령했고, 몽골의 사신을 죽였던 오트라르의 총독을 눈에 끓는 수은을 들이부어 죽이고, 무함마드는 카프리섬으로 도망쳐 거기서 죽었습니다. 이 때 몽골군은 무함마드의 아들 잘랄 웃 딘에게 파르완에서 최초의 패배를 당하기도 합니다. 이에 분노한 칭기즈 칸은 잘랄 웃 딘이 주둔한 성을 함락시키고 사람은 물론이고, 닭이나 말, 풀 한 포기까지 성안의 살아있는 모든 것을 죽였다고 합니다. 이 학살은 몽골군의 잔혹함을 널리 알리는 사건이 되기도 하였고, 이로써 호리즘 제국은 최고 전성기에 멸망합니다.



보르테 누나


1222년 몽골군의 특이한 이동경로를 확인할 수 있는 지도


그 와중에 칭기즈칸은 메르키트족이 서역의 쿠만족에게 도주했다는 핑을 확인합니다. 메르키트족은 과거 칭기즈 칸의 첫 부인 보르테를 납치하고 겁탈한 범죄 이력이 있는 몽골 부족입니다. 하여 칭기즈칸은 페르시아 북부를 짓밟고 있던 제베수부타이에게 카스피해 북쪽을 돌아 쿠만족을 한번 때려주고 본대에 합류하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충실한 보라매 제베와 수부타이는 가는 길에 조지아군을 만나 사뿐히 즈려밟아 주기도 하고, 페르시아 대군도 넘지 못했다던 캅카스를 가벼운 발걸음으로 오르다 캅카스 산민과 쿠만족의 포위를 당했지만 쿠만족에게 뇌물을 주어 돌려보내고 먼저 산민들을 섬멸한 다음, 쿠만족의 영역으로 들어가 쿠만족을 공격하고 뇌물을 회수했습니다.





칼가 강 전투. 루스-쿠만 연합군의 병력은 3만명이란 설도 있고 8만명이란 설도 있지만 몽골군의 전적을 보면 8만명도 그럴 듯하다.


몽골군에게 참패를 당한 쿠만족은 루스 공국에게 헬프를 칩니다. 맨날 치고박고 싸우던 웬수가 여기저기 얻어터진 채로 도움을 요청하자 동방의 알 수 없는 세력에 두려움을 느꼈던 루스인들은 총 8만명의 루스-쿠만 연합군을 창설하고 1223년 제베와 수부타이의 군대와 칼가 강에서 만납니다.

몽골군은 칭기즈 칸의 명에 따라 본대로 복귀 중이었기에 연합군에 싸울 의지가 없음을 표명했고 연합군도 이를 받아들이는 척 했지만, 연합군은 2만명 남짓한 몽골군을 궤멸시킬 기회로 보고 몽골군을 기습해 천여명을 죽입니다. 몽골군이 후퇴하자 연합군은 즉각 그들을 뒤쫒았지만 사실 몽골군의 후퇴는 거짓이었고, 연합군 진형이 흐뜨러지자 몽골군은 반격에 나섰고 무려 5만명의 사상자가 발생합니다.

므스티슬라프 3세의 본대만이 언덕에 의지한 채 버티다 몽골군의 안전보장 약속을 믿고 내려왔다가 포위섬멸 당하고 므스티슬라프는 처형당합니다. 이리하여 연합군은 몽골에게 참패를 당했지만 몽골군은 금나라 원정을 위해 동쪽으로 돌아갔고, 루스 공국들은 자신들이 어떤 위험을 피한지 모른채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서로 싸우기 시작했습니다. 길어봤자 13년 동안이지만요.




1235년의동유럽


총사령관 바투


몽골군의 항복 요구를 가장한 최후통첩을 거부하는 유리 2세


칭기즈 칸의 뒤를 이은 오고타이 칸은 1235년 금나라 원정을 마치고 1236년 바투를 총사령관으로 두고 서역을 공격하라 합니다. 볼가 볼가리아를 정벌하고 쿠만족을 물리쳐 킵차크 초원을 차지한 몽골군은 블라디미르-수즈달 공국의 유리 2세에게 항복을 요구하였으나 유리 2세는 이를 거부하였습니다.

몽골군은 관대해서 상대가 항복 요구를 한번 말해서 들으면 더이상 터치는 안했습니다. 한번인게 문제죠.




'죽은 자들을 위해 눈물을 흘릴 자도 없었다' 몽골군의 랴잔 공격


시트 강에서 사망한 유리 2세


바투의 몽골군은 1237년 12월 랴잔 공국을 공격하여 랴잔을 폐허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몽골군은 블라디미르 공국 주변을 맴도며 콜롬냐모스크바 등을 파괴했습니다. 유리 2세는 야로슬라블로 가서 군대를 모으고자 하였으나 유리 2세가 없는 틈을 타 1238년 2월 블라디미르-수즈달의 수도 블라디미르성도 함락당했고, 유리 2세는 노브고로드 공화국의 지원을 받아 3월에 시트 강에서 전투를 벌였지만 패배하고 유리 2세는 목숨을 잃습니다. 이렇게 블라디미르-수즈달 공국은 멸망합니다. 이 두 공국이 멸망하는 동안 이들을 도와주는 공국은 없었습니다.




러시아의 해빙기, 라스푸티차


러시아의 겨울


그후 몽골군은 파죽지세로 나아가 토르초크, 코젤스크 등의 도시를 파괴하지만, 곧 겨울이 지나 봄이 오고 독일 기갑 병력의 발을 묶기도 했던 러시아의 해빙기, 라스푸티차가 찾아옵니다. 노브고로드를 공격하고자 했던 몽골군은 끔찍한 진흙에 발이 묶어 결국 돌아가지만, 노브고로드 공화국은 1cm만 스쳐도 즉사할 몽골군의 무시무시한 힘을 직감했고 몽골에게 공물을 바치기로 합니다. 그 덕에 노브고로드 공화국은 몽골의 침략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몽골군은 남쪽으로 기수를 틀어 쿠만족들 다시한번 쓸어버리고 캅카스를 황무지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1239년 겨울이 되자 몽골군은 다시 서쪽으로 향합니다. 나폴레옹도 히틀러도 무찔렀던 러시아의 겨울이지만 초원의 추위에 단련된 몽골인에게 겨울은 오히려 강이 얼어붙어 진격로를 제공해주는 계절이었습니다.




몽골의 키예프 침공


몽골군의 공격 진로. 1236-1238년은 동유럽 북부를 공략하지만 1239-1242년은 남부를 공략한다.


몽골군은 이번엔 러시아 남부를 공격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직도 정신못차리고 각자도생하던 공국들은 하나하나 무너졌습니다. 키예프 대공 미하일 2세는 여러 공국에 지원을 요청하기 위해 떠났지만, 그 사이 몽골군이 키예프를 공격했고 드미트로 장군은 이에 용맹히 맞섰지만 1240년 12월 6일 키예프는 황폐화됩니다.

이후 갈리치아-볼히니아 공국도 몽골에 무릎을 꿇었고, 미하일 2세는 폴란드로 도주했지만 1241년 폴란드도 몽골에 의해 멸망하고 다시 헝가리로 도망쳤지만 헝가리도 그해 몽골에게 멸망합니다. 결국 1241년 미하일 2세가 몽골의 루스 종주권을 인정하기로 서약함으로써 키예프 루스 공국은 멸망합니다.




몽골의 원정로


1241년 12월 오고타이 칸이 사망하자 몽골군은 새로운 칸을 선출하기위해 동유럽 원정을 잠시 멈추고 동쪽으로 돌아가지만 대부분의 루스 공국들은 당시 바투가 지배하는 영역을 일컫는 캅차크 칸국에 속하게 됩니다. 바투는 루스 공국을 직접 지베하는 대신 군대와 공물 등의 조공을 바치고 각종 권리를 소유하는 간접 지배 방식을 택했습니다.

이렇게 루스인들은 250년간 캅차크 칸국의 지배를 받으며 유럽과 단절되었고 시대적 흐름에 뒤떨어지게 됩니다. 러시아에서는 이 굴욕적인 시기를 타타르의 멍에라고 부릅니다. 러시아는 타타르의 멍에 기간 동안 몽골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았으며 특히 몽골의 군국주의적 지배 방식은 사회 전반에 퍼지면서 훗날 소련까지 이어지는 러시아의 지배 방식으로 굳어집니다.

한편, 몽골의 칼날에서 벗어난 노브고로드 공화국은 안도의 한숨조차 내쉴 수 없었습니다.

카톨릭 세력의 공격이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알렉산드르 넵스키


네바 강 전투의 승리


카톨릭 세력의 공격은 몽골 침략 전부터 계속돼 왔습니다. 스웨덴과 노브로고드는 상시적으로 싸우고 있었고, 리보니아 검의 형제 기사단은 루시 공국들로부터 리보니아 영토를 전부 빼앗아 갔었습니다.

그러다 1240년 스웨덴은 노브고로드를 대대적으로 침공하지만, 7월 15일 네바 강에서 노브고로드 공국의 대공 알렉산드르 넵스키가 이끄는 군대에게 대패합니다. 이로써 알렉산드르 넵스키는 국민적인 영웅으로 부상하지만, 이내 권력을 강화하고자 했던 넵스키와 시민들은 충돌했고, 결국 그는 추방당합니다. 공화국답네요!




페이푸스 호


페이푸스 호 전투


그러나 같은 해 9월, 튜튼 기사단덴마크 군과 상당수의 십자군동방 정교회를 향한 성전을 선포하고 노브고로드 공화국을 공격하여 삽시간에 노브고로드의 서쪽과 북쪽이 점령당합니다. 이에 시민들은 자신들이 쫒아냈던 넵스키를 다시 불러들여 대공자리에 앉힙니다. 백의종군한 알렉산드르 넵스키는 군대를 모아 때를 기다립니다.

그러다 1941년 4월 아직 얼어있던 페이푸스 호 빙판 위에서 십자군과 노브고로드는 대판 싸우고 얼음이 깨지고 기사들이 물에 빠져 익사하는 난전 끝에 노브고로드 군이 대승을 거두고 십자군을 몰아냅니다. 그후로도 십자군은 꾸준히 노브고로드를 공격하지만 가는 족족 깨지고 맙니다.




알렉산드르 넵스키의 사망


성인으로 추앙받는 넵스키


이후 알렉산드르 넵스키는 친몽골적 정책을 핍니다. 당시 루스인들은 자기 종교를 강제로 개종시키려는 서유럽보단 종교의 자유를 인정해주는 몽골이 차라리 호감이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넵스키는 서방을 견제하고, 몽골에게 밉보이지 않으며 루스인의 안전을 책임진 위인으로 기억되었고, 1541년 그는 성인으로 시성됩니다.

알렉산드르 넵스키는 몽골의 지원을 받아 블라디미르-수즈달 공국의 대공이 되었고, 1263년 그가 사망하자 블라디미르-수즈달은 여러 공국으로 분할되었는데, 3살이었던 그의 막내 아들 다니일은 블라디미르의 작은 도시 하나를 상속받습니다. 그 도시의 이름은 모스크바입니다.




다니일 알렉산드로비치가 있을 적의 모스크바


모스크바의 어원은 고대 동슬라브어 '습기가 많은 곳'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모스크바는 13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블라디미르 공국의 작은 도시에 불과했으나, 다니일 알렉산드로비치가 모스크바 공국을 세운 이후부터 모스크바는 점차 각종 지리적 이점과 12세기에 지어진 크렘린('요새'의 러시아어)을 통한 군사적 요충지로 자리잡았고, 오카 강, 볼가 강, 돈 강, 드네프르 강 등의 여러 강을 통한 중계 무역으로 경제적 중심으로 성장했습니다.

다니일은 모스크바 최초의 수도원을 세웠다고 전해지며, 그 때문인지 그도 1652년 성인으로 시성됩니다.



'돈주머니' 이반 1세


'건방공' 시메온


다니일 사망후 계승문제로 잠깐 소란이 있었고요, 1325년 이반 1세가 모스크바 공국의 대공으로 즉위하고 킵차크 칸국에 이런저런 로비를 한 끝에 블라디미르 대공 자리 및 루스 공국들의 수장 자리와 루시 공국의 조세 징수권을 얻은 후부터 모스크바 공국은 루시 공국의 중심지로 급부상합니다. 이반 1세는 캅차크 칸국이 요구하는 공물보다 더많은 공물을 거두어 남은 돈을 모스크바에 투자했습니다. 또한 사채업을 통해 주변 공국에 하나하나 압류 딱지를 붙이며 영토를 확장해나갔습니다. 그리고 동방 정교회 총대주교를 모스크바로 데려와 모스크바를 러시아 정교회 중심지로 만들기도 했습니다.

1340년 이반 1세가 죽자 이반 1세의 자식들은 왕위 계승을 위해 킵차크 칸국에 로비를 시작했고 결국 가장 로비를 잘한 장남 시메온이 그 뒤를 이었다. 시메온은 노브고로드와 리투아니아와 싸워 모스크바의 영향력을 확장하고 동북 지역 루스 공후들에게 존대를 강요하는 우두머리가 됩니다. 그래서 세미온은 '건방공'(꼰대)이라는 칭호를 얻기도 합니다. 그러나 1353년 흑사병이 모스크바를 덮으며 그의 두 아들과 함께 시메온도 사망했습니다.




꼭 빼닮은 부자, 이반 2세(좌)와 드미트리 이바노비치(우)


시메온의 뒤를 이은 시메온의 동생 이반 2세는 처음엔 돈은 돈대로 받고 자신의 편을 들어주지않은 킵차크 칸국에 대항하고자 했으나 곧 마음을 바꾸어 킵차크 칸국에 충성을 맹세했습니다. 그도 주변 공국과의 전쟁을 통해 모스크바의 영향력을 확장한 성과를 내지만 1359년에 사망합니다.

9살의 어린 나이에 대공이 된 이반 2세의 아들 드미트리 이바노비치 돈스코이는 곧 모스크바의 성장을 두고볼 수 없었던 주변 공국들의 도전에 직면합니다. 수즈달 공국은 킵차크 칸국에 손을 써 블라디미르 대공 자리를 빼앗았고 트베르 공국은 리투아니아 군을 끌어들여 모스크바를 공격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에 기민하게 대처한 드미트리는 1375년 블라디미르 대공 자리를 지켜내고 모스크바를 안정화합니다.




보1자강 전투


명실상부한 루스 공국의 패권자가 된 드미트리는 이제 내전으로 분열된 몽골에 대항하여 타타르의 멍에에서 벗어나고자 했습니다. 드미트리는 1376년 모스크바-수즈달 연합군을 구성하여 킵차크 칸국의 볼가 강 유역을 공격합니다. 이에 분노한 킵차크 칸국의 마마이 칸은 1378년 군대를 보내지만 보자 강에서 활 대형을 유지하며 시즈 모드를 박은 상태의 모스크바-수즈달 연합군 앞에서 무지성 도강을 감행했다가 꼴아박습니다.




콜리코보 전투




몽골이 무적이 아니란 사실을 깨달은 루스인의 자신감은 하늘을 찔렀고, 마마이 칸은 대노했습니다. 그래서 2년 후 1380년 마마이 칸은 직접 군대를 이끌고 모스크바 침공에 나섰고, 거의 모든 공국과 연합한 루스 연합군콜리코보 평원에서 제대로 한판 붙습니다. 전투는 치열했으며 드미트리도 투구가 찌그러지고 말에서 떨어지기도 했지만, 결국 드미트리의 군대가 승리를 거두었고 몽골군은 후퇴했습니다. 타타르의 멍에가 벗어진 듯 했습니다.




불타는 모스크바


하지만 킵차크 칸국의 속국이었던 백장한국의 토크타미쉬 칸이 티무르의 후원을 받아 킵차크 칸국을 전체를 통일하고 루스 공국에게 충성을 강요했습니다. 기세등등해진 드미트리는 이를 거부했자만, 1382년 킵차크 칸국에 의해 모스크바는 불바다가 됩니다. 시대가 지나도 몽골은 몽골이었습니다. 토크타미쉬는 과거 몽골이 그랬듯 드미트리의 대공 자리는 터치 안했지만 루스인들에겐 다시 타타르의 멍에가 씌워졌습니다.




칭기즈 칸의 뒤를 잇고싶어했던 티무르


1395년 토크타미쉬는 건방지게 자신의 후원자였던 티무르를 공격하였지만 역관광 당했고 킵차크 칸국은 급격히 쇠퇴합니다. 티무르는 킵차크 칸국을 짓밟는 김에 랴잔 공국도 때려부쉈고 모스크바도 쑥대밭으로 만들 수 있었지만 이란 지방의 반란을 진압하기위해 철군합니다. 이후 1408년 킵차크 칸국의 실세였던 에디구는 루스 공국을 재침공하였고 킵차크 칸국이 건재하다는 걸 안 모스크바는 다시 공물을 바치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킵차크 칸국은 에디구와 토크타미쉬의 아들들과의 내전으로 인해 더이상 루스 공국에 신경을 못 쓰게 됩니다.





유독 눈이 크게 그려진 바실리 2세


눈을 뽑힌 바실리 2세


1425년, 드미트리의 뒤를 이었던 드미트리의 아들 바실리 1세가 죽자, 그의 아들이었던 바실리 2세가 모스크바 대공이 됩니다. 그런데 바실리 2세의 삼촌 유리가 자신의 왕위 계승권을 주장하고 나섰고 피튀기는 왕위 쟁탈전이 시작됩니다. 서로의 눈을 뽑고 뽑고 바릴리 2세마저 눈이 뽑힌 이 쟁탈전은 1453년이 되어서야 바릴리 2세의 승리로 끝을 맺습니다.

바실리 2세는 비록 맹인이 되었지만 그의 아들 이반 3세의 도움으로 대공으로서의 책무에 열심히 임하여, 모스크바 영토를 확장하고 대공의 권력을 강화시키는 한편, 1445년 콘스탄티노플 대주교와 비잔틴 황제가 로마 교황에게 무릎을 꿇자 이에 불복하며 러시아 정교회의 독립을 선언하기도 하였습니다.




1468년 동유럽. 킵차크 칸국은 그레이트 호드, 크림, 아스트라한, 카잔, 우즈벡, 카자흐, 시비르 등으로 나뉘어 있었다.


이반 3세


노브고로드의 베체(민회)를 진압하는 모스크바 병사들


1462년 바실리 2세가 죽고 이반 3세가 모스크바 대공에 즉위할 때 이제 그를 막아설 적은 없었습니다. 모스크바 공국은 이제 외부로 시선을 돌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1467년1469년, 두 차례에 걸쳐 카잔 칸국을 공격하였고 카잔 칸국을 무너뜨리진 못하지만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야로슬라블과 로스토프를 합병하고 노브고로드 공화국으로 시선을 돌렸습니다. 이를 눈치챈 노브고로드 공화국은 리투아니아와 동맹을 맺었지만 카톨릭 국가인 리투아니아와 동맹을 맺는 것은 모스크바와의 조약을 어기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핑계로 모스크바는 노브고로드에 압박을 가했고 결국 노브고로드는 모스크바에 상당한 영토를 양도하고 배상금을 지불합니다. 하지만 이반 3세는 이에 만족하지 못하고 1478년 노브고로드 공화국을 침공하였고, 당시 정치 문제와 리투아니아 동맹 문제로 분열돼있던 노브고로드 공화국은 쉽게 무너져내렸습니다.




소피아(조에)


이반 3세의 쌍두 독수리


1469년 교황 바오르 2세가 이반 3세에게 콘스탄티누스 11세의 조카딸인 소피아와의 혼담을 제의합니다. 이는 교황이 이반 3세를 개종시키기 위해 수를 쓴거지만 소피아는 혼인 후 동방 정교회로 개종한 후 그리스식 이름인 조에로 이름을 바꿉니다. 그리고 이반 3세는 비잔틴 제국의 황가와 결혼했다는 점을 이유로 비공식적이었지만 자신을 황제란 뜻의 차르로 칭하고 국장도 비잔틴 제국의 쌍두 독수리 휘장을 따라 만들기 시작합니다.

모스크바 공국이 비잔틴의, 로마의 후예인 제3의 로마가 된 것입니다.




칸의 사절단을 쫒아내는 이반 3세


(자칭) 황제가 된 이반 3세는 킵차크 칸국의 뒤를 이은 그레이트 호드에 더이상 충성할 이유도 없었습니다. 1476년 이반 3세는 그레이드 호드의 사절단을 쫒아냅니다. 이에 1480년 그레이트 호드의 아흐마드 칸은 폴란드와 동맹을 맺고 모스크바로 진격했고 모스크바 군대와 우그라 강에서 대치합니다.




우그라 강 대치 (Great standing on the Ugra river)


대치는 약 15~20일 가량 지속되었다가 크림 칸국이 그레이트 호드를 공격하자 아흐마드 칸이 회군 명령을 내리며 끝이 납니다. 모스크바 공국은 이들을 추격하지 않았습니다. 전투의 승부는 못 봤지만 전쟁의 승리는 모스크바 공국의 것이었습니다.


이제 루스인들은 타타르의 멍에를 완전히 벗어던진 것입니다!



 원래 이번 시간은 타타르의 멍에부터 동란의 시대까지를 다루었지만 그러다보니 양이 너무 많아져서 위트엔 타타르의 멍에와 다음 챕터를 끊어서 올리겠습니다! 반으로 쪼개도 용량이 커서 지식게에는 못 올리네요.

11
신고
희망맨【병신】
삭제된 댓글 입니다
엠십사【교슈】
RE 0
10/14 12:40
댓글은 자신을 나타내는 얼굴입니다.
이미지 첨부
이모티콘
컬러선택 
창작
전체 그림 그림낙서 툰toon 닉짤 소설&시
포토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그림] 늑대와 제비 - #01. 숲속의 주인 (2)
하얀액정 15:56 조회 11 댓글 0 5
하얀액정 15:56 11 5
[그림] 흐구우우우 +6
애귱 10/21 조회 107 댓글 6 15
애귱 10/21 107 15
[그림] 오랜만에 손그림 +1
하얀고냥귀 10/21 조회 27 댓글 1 14
하얀고냥귀 10/21 27 14
[그림] 늑대와 제비 - #01. 숲속의 주인 (1)
하얀액정 10/21 조회 34 댓글 0 6
하얀액정 10/21 34 6
[툰toon] 광란의 도가니 : 공 주워와 +1
세르게이 10/21 조회 30 댓글 1 6
세르게이 10/21 30 6
[소설&시] 생일 축하합니다-단편
바니가루선배 10/21 조회 23 댓글 0 2
바니가루선배 10/21 23 2
[툰toon] 호우!! +7
피에로 10/20 조회 230 댓글 7 39
피에로 10/20 230 39
[그림] 이것이 입시미술 Ep.1~8 +15
사이온지히요코 10/19 조회 431 댓글 15 70
사이온지히요코 10/19 431 70
[그림] 「사실적시 명예훼손」에 대해 알아보자 +13
엠십사 10/19 조회 474 댓글 13 53
엠십사 10/19 474 53
[소설&시] 상어의 사생아 - 야수(2) +2
이끼낀곰 10/18 조회 51 댓글 2 7
이끼낀곰 10/18 51 7
[그림] 그냥 만화 +5
닉네임뭐로짓지 10/18 조회 75 댓글 5 9
닉네임뭐로짓지 10/18 75 9
[그림낙서] 19)치명적인 야짤 +6
뇌가필터링을못 10/18 조회 140 댓글 6 10
뇌가필터링을못 10/18 140 10
[그림낙서] 라오 1000일 공모전 내려다가 +3
미쳤냐옹이 10/18 조회 126 댓글 3 10
미쳤냐옹이 10/18 126 10
[그림낙서] 오 낙서 낙서는 즐겁지... +8
ZZZ 10/17 조회 103 댓글 8 16
ZZZ 10/17 103 16
[그림] 배아파 +8
애귱 10/17 조회 79 댓글 8 8
애귱 10/17 79 8
[그림] 히에에엥 +9
애귱 10/16 조회 95 댓글 9 14
애귱 10/16 95 14
[그림] 군대에서 재활삼아 그린 픽셀아트 - 크로니 +5
코없는코끼리 10/16 조회 406 댓글 5 63
코없는코끼리 10/16 406 63
[소설&시] [일상시집] #23 +2
한일너구리 10/16 조회 45 댓글 2 6
한일너구리 10/16 45 6
[그림] 백신 맞은 고앵 +28
두연 10/15 조회 504 댓글 28 85
두연 10/15 504 85
[소설&시] 상어의 사생아 - 야수(1) +6
이끼낀곰 10/15 조회 51 댓글 6 6
이끼낀곰 10/15 51 6
검색
글제목
신고 사유
신고
닫기
유배 회원
유배 사유
유배 기간
유배
닫기
게시글 ID
이동할 게시판
사유
이동
닫기
받는 회원(닉네임)
쪽지 내용
보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