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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없지만 재미없는 다섯가지 역사이야기 9.history
빛의수호자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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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197 추천 14 01/26 22:43


http://www.wetrend.co.kr/bbs/board.php?bo_table=knowledge&sca=%EC%97%AD%EC%82%AC&sfl=wr_subject&stx=%EC%9E%AC%EB%AF%B8%EC%97%86%EC%A7%80%EB%A7%8C

 

지난 이야기 목록

출처 구성비

 

55% - 전공 수업

40% - YouTube Extra History 채널

5% - 그 외 자료

(정확하지 않음. 글쓴이의 체감상 수치.)

 

 

안녕하세요 우서입니다.

 

한국 최대 명절 중 하나, 설날입니다.

모두 설날을 맞아 고향집을 찾아가 친척들을 오랜만에 뵈고, 혹은 집에서 친척들을 맞이했는지요?

그러지 않더라도, 행여 만나서 안 좋은 상황이 일어났다고 해도.

앞으로 있을 일, 모두 잘 풀리길 바랍니다.

 

 

오늘은 서양사 2, 중국사 1, 한국사+베트남사 1, 경제사 1 입니다.




 

1. 세 명의 교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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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뇽의 교황궁)



 

아비뇽 유수 (1309~1378), 아비뇽은 현재 프랑스 남동부 끝자락에 있는 지역이다.

이 사건은 교황청에 교황이 있는 것이 아니라, 아비뇽에 교황이 머물게 된 일이다.

 

사건은 보나파키우스 8세의 우남 상탐(Unam Sanctam)’으로 시작된다.


우남 상탐이란, 영적인 군주, 교황의 권위는 속세의 군주, 왕과 황제들보다 더 우월하다는 의지를 선포한 문서다.


이는 중세 말, 십자군 전쟁을 기점으로 끝까지 성장했던 교황의 권위가 계속해서 추락함에 따라, 어떻게든 권위를 높이려고 발버둥을 친 문서였다.


하지만 프랑스의 필립 4세는 이를 모두 무시하고, 성직자에 대한 과세를 시도했다. (성당기사단 탄압으로 기사단의 재산 몰수. 삼부회 소집 등)


이에 보나파키우스 8세는 가아아암히 어디서 신성한 교황의 신하에게 세금을 걷어?’하고 화를 내며 필립 4세를 파문했다.


필립 4세는 코웃음을 치고, 오히려 교황을 이단으로 지명, 남색을 했다며 비난하고 부하 노가레를 시켜서 교황을 체포했다. (아나니 사건)


노가레는 교황을 혹독하게 대했는데, 심지어 교황의 뺨을 때리기까지 했다.

 

이에 충격받은 교황은 체포에서 풀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망하고 말았다.

 

그 후, 다음 교황부터는 프랑스가 교황청에 압력을 넣어서 교황은 프랑스 사람만 뽑게 했고, 추기경들 대다수도 프랑스인으로 구성했다 

교황청 또한 로마에서 아비뇽으로 옮겼다. (아비뇽 유수 사건)


그후 약 70년간, 5대에 걸쳐서 아비뇽에서 교황이 선출됐다.

 

하지만 그레고리오 11세는 교황령 수호를 명분으로 로마로 돌아가고, 로마에서 사망했다. 

이후 로마에서 이탈리아 출신인을 교황으로 뽑았다. (원래부터 교황은 이탈리아 출신만 뽑았다.)


하지만 프랑스는 이에 반박하고, 로마의 교황은 무효라고 선언, 아비뇽에서 또 교황을 선출했다.


프랑스는 클레멘스 7, 로마는 우르바노 6세였다. (1378~1417)


근데 하필이면 당시가 백년전쟁 시기라, 정치적인 요소가 들어가 대립하기 시작했다.


(로마)우르바노 6세는 잉글랜드, 아일랜드, 신성로마제국, 헝가리, 폴란드 등.

(프랑스)클레멘스 7세는 프랑스, 스코틀랜드, 부르고뉴, 나폴리, 아라곤, 카스티야, 포르투갈 등이었다.

 

이에 유럽은 혼돈에 빠졌고, 우왕자왕하다가 피사에서 공의회를 열어 로마와 아비뇽의 교황을 폐위시키고 새로 교황을 뽑자고 결의했다. (피사 공의회. 1409)


하지만 로마와 프랑스 교황은 둘 다 거부하고, 피사에서 뽑힌 교황까지 포함하여 결국 교황은 셋이 된다.

 

결국 보다 못한 지기스문트 황제는 콘스탄츠 공의회를 열었다. (1414)


피사 공의회 같은 참사가 일어나지 않기 위해 공의회의 결정은 교황이라 해도 반드시 따라야 한다.’라는 방침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 공의회에서 기존 셋의 교황은 모두 폐위하고, 새로운 교황을 선출하기로 결정하면서 드디어 교회의 대분열은 끝나게 된다.

 

하지만 이제 떨어질 대로 떨어진 교황의 권위는 더 이상 올라가지 않고

 

르네상스가 시작되면서 사람들은 점차 종교보다는 현실과 인간을 중시하는 학문을 탐구하기 시작했고.

교황과 기존 교회의 권위를 비판하는 여러 학자들이 나타난다.

 

당시흑사병으로 자기 몸에 채찍질하고 다니는 수도사들이 주변을 거닐었고, 유럽의 관문이자 기독교의 방패였던 동로마 제국이 이슬람 제국, 오스만에게 쓰러지던 시기, 백년 동안 프랑스와 영국이 전쟁하던 시기에 이런 분열까지 있었다고 하네요.

 

생각해보면 세기말이 따로 없겠네;

 

 

2. 오도아케르 : 로물루스 당신은 나쁜 사람이에요제 말을 안 들어줬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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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마의 마지막 군주, 로물루수 아우구스툴루스를 폐위하는 오도아케르)


오도아케르는 서로마를 멸망시킨 장본인으로 유명한 스키르족 출신의 장군이다.

오늘은 오도아케르가 왜 서로마를 멸망시켰는지 알아보자.

 

오도아케르의 아버지는 훈족의 왕이었던 아틸라의 궁정에서 일했던 사람이었다.

, 부족 내에서 꽤 명망이 있던 가문의 사람이었던 것이다.

 

오도아케르는 470년에 로마 제국의 용병이 됐다. 로마 제국은 후기로 가면서 변방의 방어를 게르만족과 같은 외부 민족에게 맡겼기 때문에, 오도아케르도 그랬던 것이다.


475, 오도아케르는 서로마 제국의 마지막 왕이었던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의 즉위에 큰 기여를 했다.

 

그런데 여기서 오도아케르는 무리수를 두는데….




이탈리아 거주권과 영토의 1/3(?!)을 요구했다.

 

 7f389acdcd863717222ab820e8273144_1580045869_7287.jpg

지도를 보자.

여기서 발칸반도의 서부에서 노란색 색깔이 로마 제국의 영토였다.

여기서 1/3이라면제대로 가늠은 못하겠다만, 프랑스를 달라는 것과 비슷하다.

 

가뜩이나 몰락 위기라 저 영토도 언제 잃을지 모르는 판국에 1/3이라니


아무리 즉위를 도와줬다고 해도 로물루스는 무리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래서 로물루스는 오도아케르의 요청을 거절했다.

 

이에 오토아케르는 476년에 모룰루스 아우구스툴루스를 서로마 황제에서 폐위시키고, 자신이 직접 이탈리아의 왕으로 즉위한다.


, 서로마 황제의 인장을 서로마는 이제 내 차지임. 나 인정해주셈.’라는 뜻으로 동로마 황제, 제논에게 보냈다.


제논은 어쩔 수 없이 오도아케르를 인정해주고, 로마의 장군으로 임명했다.


하지만 동로마는 오도아케르를 쉽게 둘 생각이 없었고, 동고트족과 연합하여 오도아케르에게 테오도릭을 보내, 오도아케르를 죽이게 했다.

 

결국 493, 라벤나가 포위되면서 오도아케르는 죽고, 테오도릭이 이탈리아를 차지하게 된다.

 

오도아케르가 그렇게 많은 영토를 달라고 한 이유가 뭘까.


그럴만한 깡은 어디서 나온 걸까.

진짜 궁금하다그냥 아예 로마 멸망 명분을 그렇게 삼은건가.

 

3. 무주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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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측천무후의 사진)


무주혁명이란, 측천무후가 직집 황제로 즉위하면서 여러 개혁을 한 것을 말한다.

오늘은 그녀가 어떤 개혁을 했는지 알아보고자 한다.

 

측천무후는 고종의 두 번째 황후이다.

 

기존의 황후였던 왕황후는 관롱집단(남북조 시대, 북조의 군벌집단)출신의 개국공신 집단이었는데, 측천무후는 자신의 지지세력, 한인사대부와 함께 왕황후와 개국공신 집단을 몰아내고 새로운 정치세력이 됐다.

 

그녀는 고종이 병에 걸린 이후, 실질적으로 정치를 35년 동안 직접 하였다.

 

고종 사후, 중종이 즉위하지만 측천무후가 마음에 안 든다는 이유로 폐위하고, 중종의 동생 예종을 즉위시켰다.

 

하지만 또 마음에 안 든다는 이유로 예종에게 황위를 넘겨받는 형식으로 본인이 직접 신성황제로 즉위한다. (690)

 

그녀는 즉위하자마자, 자신의 즉위를 정당화하기 위한 여러 정책을 펼친다.

 

먼저 국호를 주로 바꿔, 옛날 주나라를 재현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정당화했다.

 

주나라의 왕이 제후를 소집하던 전당, 명당을 복원했고, 주례에 따라서 관제를 개혁하고, 낙양을 신도로 개칭, 수도로 삼았다.

 

이후 자신을 높이 세우기 시작한다


불교의 경전, 대운경을 위조하여 정광천녀가 여왕으로 변신하는 이야기를 미륵불이 하생하여 여자 황제가 된다는 식으로 예언서를 제작하였다. 이를 여황제의 출현은 곧 부처의 의지로 해석되도록 했다.

측전문자를 제작하여 자신을 미화, 신성시했다.

 

가장 눈여겨 볼 것은 신진관료 등용정책이다.


구 귀족세력이었던 관롱집단을 숙청하고. 비관롱집단 계열의 신흥 서민계층과 중앙 정계에서 소외된 산동 귀족을 적극적으로 등용하기 시작했다.


매관매직을 남발하고.


북문학사를 만들어, 재상의 일을 대신하게 했다. 그리고 이 학사가 굉장히 중요한데.


기존에는 여러 관리에 걸쳐서 황제에게 상소문이 가고, 황제의 명령이 여러 관리에 걸쳐서 내려왔지만.

이제 북문학사로 직빵으로 상소문이 올라가고 명령이 내려갔다.


결국 황제의 명이 아무 조작 없이 내려갈 수 있고, 상소문 또한 아무 조작이 없어진 것이다.

 

무주혁명의 의의는 구귀족의 문벌사회에서 신진과거관료에 의한 능력주의 사회로 넘어갔고.


무주시대에 과거에 합격한 요숭과 송경이 현종시대 개원의 치세라는 경제적 안정 시기를 만들었다.

 

하지만 결국 무주는 멸망하고 만다. 측천무후 말년, 여러 폐단이 생기고 병역 기피 현상이 심화되기 시작했다.


측천무후는 병에 걸려 정사를 제대로 보지 못했고, 결국 재상 장간지의 압박으로 무후는 퇴위하고, 중종이 복위하면서 당나라는 재건된다.

 

주제 생각 안 나서 결국 발표 자료로 땜빵

 

발표를 하면서 한 가지 질문이 있었습니다.


당시는 여성에 대한 대우가 좋지 못했는데, 주변국에서 여자 황제가 즉위했다고 반발하지 않았나?’


이에 대한 교수님과 저의 답변은 이랬습니다.

 

국력이 강한 나라가 여자 황제를 옹립했으니, 주변국에서 뭐라 할 수가 없죠. 애초에 신라에서도 여자 군주가 몇 있었고, 일본에서도 있었는데. 항의하면 결국 내로남불 아니겠어요?”

 

. 그리고 관련 기록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4. 베트남 이씨, 화산 이씨

 

우리나라에 베트남의 왕조였던 리 왕조의 후손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시나요?


그 후손이 바로 우리나라의 화산 이씨입니다.


베트남에서는 화산 이씨를 리 왕조의 후예로 인정했고, 베트남에서 살 경우 여러 곳에서 베트남인과 동일한 특혜를 주고, 리 왕조가 건국된 음력 315일에 공식 행사까지 한다고 합니다.

 

오늘은 화산 이씨의 선조, 이용상의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이용상은 베트남 리 왕조 영종의 7남이자, 고종의 동생, 혜종의 삼촌이었다.

 

그런데 혜종은 정치를 제대로 하지 않았고, 외척인 진수도에게 모든 국정을 맡겼다


진수도는 권력을 이용, 혜종을 협박해서 혜종의 딸 소성공주에게 양위시키고, 자신의 조카 진태종과 결혼

그리고 소성공주가 남편 진태종에게 양위하는 형식으로 진태종이 즉위한다.


그렇게 베트남 리 왕조는 망하고 쩐()왕조가 건국됐다.

 

진수도는 통국태사가 되어 전권을 장악하고, 리 왕조의 모든 왕족들을 죽이기로 했다.

그를 위해 혜종의 장례식에 모든 왕족들을 모이게 했다


하지만 이용상만은 그 수를 꿰뚫고, 병을 핑계로 불참하고 배를 타고 도망갔다.

 

이용상의 배는 돌고 돌아 고려의 땅, 황해도 화산에 도착했다. (북한 옹진군


마침 도적떼(또는 몽골군)가 화산의 백성들을 죽이고 데려가기에, 도적떼를 물리치고 백성들을 구해줬다고 한다.


이를 옹진현령이 조정에 보고, 고려 왕, 고종은 이 소식을 듣고 베트남의 왕자가 왔다며 크게 환영했다


그리고 망국이라는 건 어느 나라도 피할 수가 없다. 내가 언제 망국의 왕이 될지 누구도 모르는 일 아닌가?’라며 극진히 대우했다.


때마침 몽골군이 쳐들어오고, 이용상은 위효관이라는 사람과 함께 수성전으로 몽골군을 물리치기로 했다.

 

몽골군은 회친을 요구한다며 황금을 담은 상자 5개를 선물로 보냈다


하지만 몽골군은 몰래 땅 아래로 자객을 보내고 있었다

이용상은 이를 간파하여 구멍을 뚫게 명령을 내리고, 그 구멍에 끓는 물을 부어 자객을 몰아냈다.


그리고 그 5개의 상자를 금종이를 바르고 적진에 도로 던졌다

몽골군은 상자를 받아 깜짝 놀라고 군사를 돌리고, 매복한 고려군 병사들이 기습하여 몽골군을 격파했다고 한다.


이후 고종은 이용상에게 식읍 2천호, 지방 30리와 화산군이라는 작위를 수여했다.

 


19953, 화산 이씨 종친회 대표들이 베트남을 찾아왔고, 베트남 정부의 중요직들이 모두 나와서 왕손으로 예우했다고 한다.

 

이러한 예우의 이유는, 베트남의 리 왕조는 최초로 중국의 지배에서 벗어나서 국가를 세운 왕조이라, 베트남 정통성의 근본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리 왕조에는 한 전설이 있는데, 그것이 현실화됐다고 한다.


나무 숲이 사라지고 따오케 상물이 마를 때, 리 왕조가 다시 돌아온다.’는 전설이다.

실제로 1995년 당시, 지방의 나무 숲은 사라지고 강은 농토로 변했다고 한다.

 

신기하네

 

5. 달러가 기축통화가 된 과정

 

이번에는 좀 어려운경제사에 대한 이야기다.

어째서 달러가 기축통화가 되었을까? 그 절차를 간단하게나마 이야기하고자 한다.

 

원래 그 이전까지는 금이 기축통화였다. 중국으로 은이 너무 흘러간 뒤로, 당시 경제대국이었던 영국은 금에 가치를 두어 화폐를 만들었다


이를 바로 금본위제라고 한다.

 

대부분의 나라가 그랬다. 금본위제 하에서 화폐가 오고가고, 화폐를 교환했다.

 

그런데 전쟁이 터진다.

 

1차 세계대전이.

 

1차 세계대전으로 유럽의 여러 국가는 미국에서 금을 주고 수많은 군수물자를 구매했다.


결국 유럽에서 금이 심히 고갈되었고, 금본위제로 돌아가기 힘들었다.

 

거기에 2차세계대전에 대공황까지 터지면서 결국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버렸고.


그나마 회복했던 금도 다 쓰면서 더 이상 금본위제를 유지할 수 없게 됐다.

 

결국에는 새로운 기축통화를 찾아야 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미국의 달러였다.

 

미국은 앞서 말했듯이 세계대전으로 많은 군수물자를 팔면서 굉장히 많은 금을 들여왔고.

미국은 그 굉장히 많은 금 덕분에 금본위제 체제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래서 달러를 기축통화로 결정했다. 모든 화폐를 달러를 기준으로 삼기 시작했다.

 

달러가 기축통화가 된 것은 이런 절차로 이루어졌다.

 

그럼 금본위제는 언제 철폐됐을까?

 

여러 나라들은 미국이 많은 금을 가지고 있는 것에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프랑스를 비롯, 여러 국가들이 돈을 주고 미국에게서 금을 사오기 시작했다.


결국 미국의 금이 떨어지게 되고.


1971, 리처드 닉슨은 달러의 금본위제를 폐지.

 

이로써 모든 화폐의 금을 기반으로 두는 일은 사라지고, 화폐라는 종이는 돈으로서 진정한 의미를 갖게 된다.

 

 

어우힘드네요.

보통 역사글을 쓸 때 2~3시간 정도 걸립니다. 그런데 오늘은 4시간이 걸려버렸네요

세상에 소설 쓸 때도 이렇게 오래 쓴 것 같지 않았는데.

오늘은 좀 힘들었습니다. 특히 금본위제는제가 수학 쪽으로는 젬병이라 설명하는데 애 썼어요.

아무튼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14
신고
하양새
삭제된 댓글 입니다
스테판3분커리
아조씨 지증왕 야기 해줘요 지증왕
RE 0
01/27 04:01
번작이끽야
화산 이씨 얘기는 흥미롭네요
RE 0
05/07 18:55
댓글은 자신을 나타내는 얼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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